삼성그룹이 신입사원 입사시 서류 전형을 내년부터 20년 만에 부활하기로 결정했다. 또 면접시험에서 창의성을 적극 평가하고 서류 전형시 직군(職群)에 따라 자신의 업무 관련 강점을 보여주는 에세이를 받기로 하는 등 대졸(大卒) 공채 사원 채용제도를 전면 개편한다.
삼성은 1995년부터 일정 수준의 어학 성적과 학점을 갖춘 지원자는 아무런 제한 조건 없이 누구나 삼성직무적성검사(SSAT·Samsung Aptitude Test)를 볼 수 있는 이른바 '열린 채용' 시스템을 시행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하반기 10만명씩 매년 20만명 이상이 서류 전형 없이 직무적성시험을 보는 바람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왔다. 이런 점을 감안해 삼성은 올 1월 대학별 총장추천제·서류 전형 도입 등을 담은 채용제도 개선안을 내놨다가 대학 서열화(序列化)와 줄세우기 논란에 부딪혀 이를 백지화했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내년부터 서류 전형을 부활시키지만 '대학총장추천제'는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의 채용 방식 변경이 다른 대기업에도 파장을 일으켜 취업 시장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각종 인증(認證)제 등 도입
7일 본지가 확인한 결과 삼성그룹은 2015년 상반기 공채(公採)부터 '직무적성검사(SSAT)→면접'으로 이어지는 지금까지의 채용 방식을 직군(職群)에 따라 '서류 전형→SSAT→면접' 또는 '서류 전형→면접'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신(新)입사제도'를 잠정 확정하고 최종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인사팀에서 TF(태스크포스)를 꾸려 다양한 신입사제도를 논의해왔다.
이번 '삼성 신입사제도'의 핵심은 20년 만의 서류 전형 부활과 서류 전형에서 직무 역량 평가 도입이다. 직무 역량 평가의 경우 엔지니어링 직군과 테크니션 직군에서는 공학인증제도를, 소프트웨어(SW) 직군에서는 소프트웨어 검정제도를 각각 도입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겐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SSAT를 면제한다. 삼성 관계자는 "마케팅이나 경영지원 직군에 대해서는 입사시 에세이를 쓰게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면접 방식도 창의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식으로 바꾼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채용제도 개편과 관련, "삼성 입사를 둘러싼 사회 전반의 과잉 부담과 비효율을 줄이도록 한다는 목표"라며 "최종 조율 과정에서 일부 바뀔 여지는 있으나 서류 전형 도입으로 SSAT를 보는 인원을 현행 연간 20만명에서 3분의 1 이하로 낮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갈수록 전문화·세분화되는 직무를 수행할 지원자를 심층·종합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서류 전형에서 직무 역량 평가를 추가하고 SSAT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매년 20만명 시험 '비효율' 지적
그동안 '삼성 고시(考試)'로 불리는 SSAT는 응시 자격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졸 공채 시험에 지원자가 폭주하고 막대한 사회적 비효율 발생을 촉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시중 서점가엔 SSAT 수험서만 300종 넘게 나와 있고, SSAT 준비를 위한 사설(私設) 학원과 특강(特講)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삼성 취업 준비생들이 SSAT 수험서 구입과 학원과 같은 사교육 시장에 지출하는 비용은 연간 수백억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매년 20여만명이 시험을 치르더라도 최종 합격자는 1만명 이내여서 탈락한 19만명이 갖게 되는 '반(反)삼성 정서'도 시험제도 전면 개편을 낳은 주요 이유로 꼽혀 왔다.
2010년 당시 연간 7만명이던 응시자 수는 3년 사이에 3배 넘게 팽창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고사장 대여료와 시험지 인쇄비, 시험 감독관 경비 등 SSAT 실시를 위한 직간접 비용으로만 100억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말했다.